[책마을] '최초'를 이뤄낸 선사시대 천재들

입력 2021-12-09 17:32   수정 2021-12-10 02:02


인간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약 600만~800만 년 전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와 진화를 거듭했고, 약 30만 년 전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했다. 그런데 현대인은 조상인 이들을 미개인 취급한다. 동물 가죽을 입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동굴에 사는 사람으로 말이다. 당시 썼던 도구와 기술이 덜 발달했다는 이유로 그들의 지능도 지금보다 현저하게 떨어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인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듯 인간 문명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미국의 과학 분야 대중작가 코디 캐시디는 《제일 처음 굴을 먹은 사람은 누구일까》에서 “선사시대에도 천재가 살았다”고 말한다. “선사시대에도 바보, 얼간이, 어릿광대, 배신자, 겁쟁이, 말썽꾸러기, 사악한 사이코패스가 살았던 것처럼 다빈치와 뉴턴에 견줄 만한 천재들 또한 존재했다.” 책은 ‘누가 처음 OO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세상을 변화시켜온 혁신과 그 뒤에 숨은 고대의 천재들을 찾아나선다.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을 한 권에 집약해놓은 책이다.

첫 질문은 ‘인류 최초의 발명가는 누구였을까’. 약 300만 년 전 아프리카 동부에 살던 한 여성을 저자는 지목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인류종에 속했던 이 여성은 신장이 약 120㎝에 몸무게는 약 29.5㎏이었다. 독수리와 흑표범을 피해 나무를 오르내리고, 동물 사체와 과일을 찾으며 하루를 보냈다. 젖먹이 아기를 낳으면서 생활은 더욱더 고달파졌다. 포유동물 새끼는 대부분 태어나자마자 걷거나 뛸 수 있다. 그게 안 되면 적어도 엄마한테 매달려 있을 힘이라도 있다. 머리가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한 인간의 아기는 좁은 산도를 통과하기 위해 몸의 근육이 충분히 발달하기도 전에 태어나야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덩굴식물 등으로 엮은 아기 띠였다. 아기 띠는 사소한 발명품이 아니었다. 인류의 뇌는 엄마 배 속에서 점점 더 커졌고, 엄마들은 더 이른 시기에 아기를 출산하게 됐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영국 풍자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그는 세계 최초로 굴을 먹은 대담한 남자였다’는 유명한 글을 남겼다. 바닷가 바위에 붙은 흐물흐물한 생명체를 최초로 먹으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란 뜻에서다. 그의 말에서 틀린 부분이 있다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점이다. 굴은 선사시대 때부터 먹기 시작했는데, 채집은 여성이 담당했다. 굴을 먹은 가장 오래된 흔적은 16만4000년 전 남아프리카의 호모사피엔스 거주지에서 발견됐다. 모닥불을 피우고 남은 숯과 함께 굴 껍데기가 나온 것. 당시 호모사피엔스는 현대인과 거의 비슷했다. 저자는 “당신이 탄 버스 옆자리에 앉는다고 해도 즉각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굴을 처음 먹는 데 그렇게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도 한다. 다른 동물들이 굴을 먹는 모습을 보고 호모사피엔스도 따라 먹어봤을 것이란 얘기다. 다만 굴을 채취하기 위해선 바다 조류를 예상해야 한다. 아프리카 남단에선 매달 며칠만, 그것도 하루에 몇 시간 동안만 해수면이 아주 낮아진다. 자주 일어나지도 않고, 일정하지도 않다. 따라서 학자들은 당시 인류가 밀물과 썰물의 주기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을 것으로 본다.

6만4000년 전 발명된 활은 어린 남자아이의 장난감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호모사피엔스부터 버핏 원숭이에 이르기까지 젊은 수컷 영장류는 발사체 장난감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호모사피엔스는 1만6000년 전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고, 1만5000년 전부터는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5600년 전에는 말을 타기 시작했다. 식용 등을 위해 말을 기르고는 있었지만 말을 탈 생각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땐 얕보기 쉽다. 역사서인데도 200여 쪽에 불과하다. ‘누가 최초일까’라는 질문으로 이뤄진 구성은 그저 그런 흥미 위주의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재미와 정보를 다 갖춘 수작(秀作)이다. 학술적인 내용과 버무려 당시 상황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펼쳐낸 저자의 글솜씨가 상당하다. 단순히 누가 최초로 무엇을 했다는 데 그치지 않고 왜 그렇게 했고, 그로 인해 인류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까지 서술해 짧은 글 속에서도 의미를 풍부하게 만든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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